2/4분기 회원과 책읽기 프로그램 완료

관리자
2024-07-16
조회수 396

#한줄서평쓰기  #가녀장의시대

2/4분기 회원활동으로 진행한 한줄서평쓰기가 완료되었읍니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한줄서평을 올려주신 분들께 

커피교환권을 보내 드렸습니다.

이*진, 송*진 , 하*란, 한*경 

감사드립니다.
 


<하*란님의 한줄서평>

# 책 읽고 한줄서평쓰기
가녀장의 시대: 가부장도 가녀장도 우리가 가진 권력을 특권을 어떻게 사용하는냐로 좋을수도 나쁠 수도 있다
나의 가부장은 아빠의 권력을 아름답게 사용하셨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특권을 권력을 아름답게 사용하고 싶다
책 읽고 커피 쿠폰 받아 보라고 밴드에 초대해 주신 이경진샘 고마워  


<이*진님의 한줄서평>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작/ 이야기장수
오 이런부분 좋다 하는부분에 밑줄쳤봤어요.
그리고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해야겠어요.
딸이 사장이 되어서 모부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모부께서는 그들이 잘하는 능력으로 돈을 벌고~  참 좋네요.


<송*진님의 한줄서평>

가녀장의 시대를 다 읽었습니다
재밌고 기발하네요
#가녀장의시대
#이슬아장편소설
슬아같은 가녀장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복희의 살림 돌봄 노동을 인정해주고 급여로 정산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복희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돌봄살림 노동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웅이같이 자기의 청소 노동과 살림 노동을 책임지는 사람들도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복희의 월급은 웅이 월급 의 두 배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야." 가녀장이 말했다. 이에 관해 웅이는 어떠한 불만도 없다.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 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 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을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 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한*경님의 한줄 서평>

가부장의 반대 가녀장인가? 하고 미러링을 예측하며 책을 들었다..
그런데, ‘아비 부‘ 대신 ‘계집 녀‘를 넣은 ‘가녀장’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아버지가 아닌 딸이 그 집의 가장이라는 뜻으로의 가녀장이었다. (but, 글의 소재상 미러링은 기본에 깔려 있다. 거칠거나 무겁게 다루어 지지 않는다)
이 어색한 단어가 글의 소재이자 주제가 되었다.
읽는 내내 웃고 울고 했다. ㅋ~
이렇게 유쾌하게 글을 쓸 수 있다니..
이슬아작가 참 멋지구나.

책을 읽는 내내 엄마의 서사와 나의 서사를 기억해 냈다.
사랑스런 용숙씨의 파란만장한 삶.
용숙씨가 꿈꾸던 당당한 여성에 대한 대리만족의 반쪽 쯤 될까 싶은 나.
그녀의 지지와 불안을 느끼며 꼴리는 대로 살아가는 나의 삶을 자꾸 그려보며 읽어내려갔다.

책의 내용은 출판사 사장 슬아와 그리고 출판사 직원인 엄마 복희, 아빠 웅이의 이야기다.
책속에서>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이 그 세월에 대해 가장 자세히 썼다는 게 신기했다. 존자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딸이 들려준 글은 딸의 딸이 쓴 문장이었다. 존자 혼자서 푸념처럼 늘어놓던 과거가 삼대를 거쳐 슬아의 버전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존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슬아의 기억과 복희, 영희, 윤희, 병찬의 기억이 뒤섞인 편집본이었다. 존자는 이야기의 주인이 여럿임을 알게 되었다. 존자의 삶은 존자만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다른것 같은 각자의 삶을 들여다 보면 또 모두 비슷한 감정과 곡절을 가지고 가는 듯 하다..
책속에서> 하루 두 편씩 글을 쓰는데 딱 세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세 명의 독자가 식탁에 모여앉아 글을 읽는다. 피식거릴 수도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읽기가 끝나면 독자는 식탁을 떠난다. 글쓴이는 혼자 남아 글을 치운다. 식탁 위에 놓였던 문장이 언제까지 기억될까? 곧이어 다음 글이 차려져야 하고, 그런 노동이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된다면 말이다. 그랬어도 슬아는 계속 작가일 수 있었을까? 허무함을 견디며 반복할 수 있었을까? 설거지를 끝낸 개수대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문서를 마주하고도 매번 새 이야기를 쓸 힘이 차올랐을까? 오직 서너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복희가 사십 년째 해온 일이 그와 비슷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 매일 해도 표도 나지 않는 가사노동을 슬아의 글노동과 비교하여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 난 이런 표현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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